2010年に訳したもの(記事を書いた方は2009年に作成)ですが、
旧ブログでのアクセス数やブックマーク率が高かったので移動させ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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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6년간의 활동 – 그것은 한편의 잔혹극이었다
2010-09-17 , Friday
東方神起、6年間の活動-それは一方で残酷劇だった
2010-09-17、Friday
[2009년 8월 5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를 미뤘는데 1년이 훌쩍 지났네요. 동방신기 3인이 제기한 것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의 문제’는 사실 이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켜봐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느껴온 바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떤 문제’였는지, 이야기를 보태고자 합니다. 글이 깁니다. 여유있게 읽으시길]
[2009年8月5日に作成した文です。
色々な理由で公開を先送りにしましたが、1年がさっと過ぎましたね。
東方神起3人が提起したことに関しては「システムの問題」であると考えます。
「システムの問題」は事実彼らだけでなく、彼らを見守ってきた数多くの方々が
感じてきたことでもあります。
それが「どんな問題」であったか、話を加えようと思います。
文が長いです。 余裕を持って読んでください。]
지난 7월 31일 동방신기 멤버 세명이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때 우리는 무척 놀랐지만 또 동시에 ‘터질게 터졌구나’하는 느낌을 가진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그룹의 활동은 결코 이대로는 계속 되어서는 안될, 지나친 강행군과 무리수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젊은 뮤지션들이라서 각오가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고 넘겼으나, 차츰 차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불행히도 아주 오래 지속되어온 일이다.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2005년부터 동방신기의 음악에 주목했고 그 이후로 이들의 활동을 관심깊게 지켜봐왔다. 지금 이들의 빼어난 실력과 독특한 음악적 컬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터이지만, 2005년 당시에도 이들의 재능은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시아준수의 목소리는 두터운 밀도를 뽐내고 있었고, 영웅재중은 락보컬리스트를 해도 될 놀라운 힘을 갖추고 있었다. 믹키유천은 감성이 돋보였고, 유노윤호는 목소리의 베이스가 좋았으며 최강창민은 남다른 음역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앙상블이었다. 화려하고 동적이었다. 종종 과잉되거나 모자라는 점이 없지 않았으나 매일 매일 나아지는 속도가 돋보였고 매일 매일 달라지는 감정 표현들도 특이했다. 거기다 다섯 멤버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라든가 자세 또한 일류 라이브 뮤지션의 ‘전초적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어가 나타났다’라는 기쁨에 우리는 꽤 많은 무대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기도 했다. 2006년 2월, 이들은 첫 콘서트를 4일간 치루었는데, 그건 그야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기대했던 바대로 빼어난 라이브 뮤지션들이구나’라는 깨달음에 한없이 즐거웠다. 올해 일본 음악계를 뒤흔들며 4번째 일본 투어를 도쿄돔 2일 공연으로 마무리한 이들의 놀라운 힘은, 이미 첫 공연부터 표출되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즐거움에 가득찬, 벅찬 감상은 이미 장문의 관람기로 남긴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공연 후 뒷풀이에서 멤버들은 즐거움에 가득 차서 ‘또 공연하고 싶어요. 더하게 해주세요’라고 어린 아이처럼 경영진에게 이야기했다고 나와있다. 우리 역시 이들의 다음 무대를 한없이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들 무대를 보면서 누린 ‘온전한 즐거움’의 마지막이었다.
去る7月31日、東方神起のメンバー3人が専属契約効力停止仮処分申請を出した時、
私たちはすごく驚いたがまた同時に、’爆発するものが爆発したんだな’
という感じがしたものもまた、事実。
なぜなら、このグループの活動は決してこのまま継続されてはいけない、
行き過ぎた強行軍と無理な方法の連続だったためだ。
初めは’若いミュージシャンだから覚悟があるんだな’と考えただけだったが、
徐々に何かが間違っているんじゃないかと感じ始めた。
そしてこれは不幸にもとても長く続いてきた。
その開始は2005年に遡る。
私たちは2005年から東方神起の音楽に注目し、
その後彼らの活動に深い関心を持って見守り続けてきた。
今彼らのずば抜けた実力と独特の音楽カラーは
多くの人々に認められているはずだが、
2005年当時にもこれらの才能はまざまざと現れていた。
シア・ジュンスの声は厚い密度を誇っていたし、
ヨンウン・ジェジュンはロックを歌ってもかまわない驚くべき力を備えていた。
ミッキー・ユチョンは感性が際立ってみえたし、
ユノ・ユノは声のベースが良く、チェガン・チャンミンは並はずれた音域を持っていた。
何より驚くべきことはアンサンブルだった。
華麗で躍動的だった。
たまに度が過ぎたり足りない点がなくはなかったが、
毎日良くなる速度が引き立って見え、毎日毎日変わる感情表現も特異的だった。
その上5人のメンバーがステージで見せるエネルギーや姿勢もまた、
一流のライブミュージシャンの’前哨的な感じ’を受けるのに充分だった。
‘大物が現れた’という喜びに、私たちはかなり多くのステージを現場で直接見守った。
2006年2月、彼らは初めてのコンサートを4日間行ったが、
それはそれこそ驚くべき経験だった。
‘期待したとおり、ずば抜けたライブミュージシャンだな’ということを悟り、
限りなく楽しかった。
今年(2009年)日本の音楽界を揺るがした4回目の日本でのツアーを
東京ドーム2日公演で終えた彼らの驚くべき力は、
すでに初めての公演の時から表に出ていたのだ。
その楽しかった記憶でいっぱいの感想は、すでに長い感想を文で残したことがある。
報道によると、そのステージの後、打ち上げでメンバーは楽しさでいっぱいで
‘またライブがしたいです。もっとでき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と
幼い子供のように経営陣に話したと言うことだった。
私たちはまた彼らの次のステージを限りなく期待することになった。
しかしそれは私たちが彼らのステージを見ながら享受した
‘完全な楽しみ’の最後だった。
2006년 후반기, 잔혹극이 시작되다
2006年後半、残酷劇が始まる
2006년 초부터 이들은 일본 활동에 매진했다. 일본 정규 음반을 냈고 싱글 음반도 꼬박 꼬박 나왔다. 각종 프로모션과 방송 출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국 활동 역시 병행했다. 2월에는 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치뤄냈다. 한국에서 월드컵 응원 싱글 ‘동방의 투혼’을 발매했고, 독일까지 가서 월드컵 응원 방송에 출연한다. 한마디로 쉴틈없는 스케쥴이었다.
여름이 되어서도 이들은 여전히 바빴다. 일본 소속사 에이벡스의 여름 합동 투어인 에이네이션(A-nation)투어에도 참여했으며 한국소속사 SM이 기획한 영화 베케이션(Vacation) 촬영을 했으며 OST도 녹음한다. 아시아 투어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9월, 이들은 한국 활동에 복귀한다.
당시 신기했던 것은, 분명히 앨범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음반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저렇게 쉼없이 몰아쳤으니 짧게 잡아도 두어달쯤 쉬고, 한국 활동을 하겠구나 예상했는데, 이들은 바로 앨범을 들고 한국 무대에 섰다. 에이네이션 투어가 끝난 날짜는 8월 26일. 동방신기가 새 앨범을 들고 컴백한 날짜는 9월 29일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아준수는 SM의 신인, 장리인과 프로젝트 싱글을 내고 방송 출연을 하는데, 그것이 9월 9일이다.
2005년부터 이들을 지켜봐왔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이 휴식기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앨범이나 무대는 일종의 결과물이다. 이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는 길게는 몇개월, 짧게는 몇일의 연습을 거쳐야한다. 동방신기는 모두가 알다시피 춤과 노래를 같이 하는 팀이고, 또 다섯명이 앙상블을 맞춰야 하는 팀이다. 그러니 공개된 스케쥴에 그 연습시간을 감안하면, 여기에 덧붙여질 대기 시간이라든가 이동 시간 등까지 감안하면 휴식기를 갖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마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절대시간’이 마이너스일 터였다.
그 결과는 곧 나타났다. 9월 9일 시아준수와 장리인의 방송 무대를 보고 당시 우리는 할말을 잃었다. 시아준수의 목소리 상태가 최악이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크게 도두라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초 동방신기의 4일 연속 콘서트를 지켜본 우리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공연 4일째에도 더욱 강해지고 탄탄해지던, 대단히 안정감넘치고 체력좋은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체력 좋은 소리를 그야말로 끝까지 밀어붙여 기어이 탈진하게 만든’ 연속 공연 40일째쯤 됨직한 목소리였다. 젊음과 근성으로 버티고 있긴 했지만, 더 무리하면 목소리에 이상이 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태롭게 느껴졌다.
깜짝 놀란 우리들은 SM에 취재 루트로 문의를 했다. ‘아무 이상 없으니 걱정마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6年初めから彼らは日本での活動にまい進した。
日本でアルバムを出し、シングルもずっと出し続けてきた。
各種プロモーションとテレビ・ラジオ出演が終わりなく続いた。
韓国の活動もやはり平行して行った。
2月には韓国で単独コンサートをした。
韓国でワールドカップの応援ソング’東方の闘魂’を発売し、ドイツまで行って
ワールドカップの応援番組に出演する。 一言で休む間のないスケジュールだった。
夏になっても彼らは相変らず忙しかった。
日本の所属事務所エイベックスの夏フェスであるa-nationのツアーにも参加し、
韓国の所属事務所SMが企画した映画『Vacation』の撮影もし、OSTも録った。
アジアツアーも進行した。
そして9月、彼らは韓国活動としてカムバックする。
当時不思議だったのは、確実にアルバムを準備する時間がなかったにも関わらず、
アルバムがリリースされることだった。
あんな風に休むということなく追いこまれていたので、短く考えても2,3カ月休んで、
韓国での活動をするだろう予想していたが、
彼らはすぐアルバムをひっさげ韓国でステージに立った。
a-nationが終わった日は8月26日。東方神起が新しいアルバムでカムバックした日は9月29日だった。
それも足りずシア・ジュンスはSMの新人、チャン・リインと企画シングルを出して
テレビ出演をするが、それが9月9日だ。
2005年から彼らを見守ってきた私たちは驚いた。
この人たちがオフ期間を持たないという事実を悟ったのだ。
アルバムやステージは一種の結果だ。
この結果を出すためには長くて数ヶ月、短く何日かの練習を積まなければならない。
東方神起はわかるようにダンスと歌を共にするチームで、
また、5人がアンサンブルを合わせなければならないチームだ。
だから公開されたスケジュールにその練習時間を勘案すれば、
ここに付け加えられる待機時間とか移動時間などまで勘案すれば、
オフを持たない程度ではなかった。
多分人生を生きていく上で必要な’絶対時間’がマイナスのはずだった。
その結果はまもなく現れた。
9月9日シア・ジュンスとチャン・リインのステージ放送見て、
当時私たちは言葉を失った。
シア・ジュンスの声の状態が最悪だったのだ。
普通の人々には特に目立ってはわからなかっただろう。
しかし2006年初めの東方神起の4日連続のコンサートを見守った私たちには衝撃的だった。
彼の声は公演4日目でも、より一層強くなり太くなる、
非常に安定感あふれた力強い声だったためだ。
でもその時のそれは’力強い声をそれこそ最後まで押し通し、完全に疲れきった’
連続公演40日目ぐらいかと思うような声だった。
若さと根性で持ちこたえてはいたが、さらに無理をすれば声に異常がでるのではと思うほど、
危険に感じられた。
驚いた私たちはSMに取材ルートで問い合わせをした。
‘何も異常はないから心配ししないでください’という返事が返ってきた。
다리를 다쳐도, 목소리가 상해도, 본드를 들이마셔도 – 일정을 고수
足を怪我しても、声がつぶれても、ボンドを飲んでも
-日程を固守
동방신기의 스케쥴은 아무 변동없이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해 3집 음반을 낸 동방신기는 대부분의 무대에서 립싱크를 한다. 몇차례 라이브 무대를 가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무대와 연말 시상식들은 모두 립싱크였다. 팬들은 아쉬워했고, 대중들에게선 빈축을 샀다.
보통 립싱크가 비난받는 이유는 하나다. 가수들의 가창력 부족을 커버하는 수준으로 남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 이들의 립싱크는, ‘컨디션 난조에도 스케쥴을 밀어붙이기 위한 립싱크’가 혹시 아니었을까. 이미 해당 연도에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올라이브로 투어를 해내며 빼어난 라이브 아티스트임을 과시했었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14일 유노윤호는 방송 녹화를 하던 중 본드 음료수 사건의 희생자가 되어 병원으로 급송되어 위세척을 한다. 소위 ‘안티’를 자처하는 한 여성의 악의적인 범행의 결과로, 본드가 들어간 음료수를 마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대형사고였으나 다행히 그는 곧 회복되었다. 하지만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누가 생각해도 이런 사고를 당했을 때에는, 휴식기를 가지고, 정신적 안정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역시 동방신기의 스케쥴은 아무 변동없이 진행된다. 그가 입원했을 때에는, 나머지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하고, 그는 퇴원하자마자 팀에 복귀한다. 심지어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프로그램조차 재촬영한다. 그 즈음 그들의 모습에는 눈에 띄게 피로가 깃들기 시작했다. 젊은 뮤지션들의 모습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 건강함과 패기 아닌가. 기획사의 무신경한 조치를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상을 입어도 투혼으로 서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는 준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한번으로 그쳐야 정상이다. 그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시스템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시스템의 이상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부당한 관행인 것이다.
이들의 부상과 사고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5년에 영웅재중이 다리를 다쳤으나, 활동은 계속되었다. 2006년 일본 투어가 끝난 직후에, 유노윤호는 아시아 투어를 준비하다가 다리를 접지르기도 했다. 그 상태로 에이네이션 공연을 위해 출국하려고, 매니저 등에 업혀 출국하는 장면이 보도되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올해 2009년, 19회에 달하는 일본 투어를 시작하기 직전, 시아준수는 리허설중 다리를 다친다. 에이벡스는, ‘공연 취소까지 고려했으나 본인 의지로 공연을 강행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시아준수는 투어 초기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만 부른다. 이런 상황이 보도되면, 사람들은 공연을 안하는 시간에는, 이들이 휴식을 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그런 일은 없다. 시아준수가 다리를 다친 그 기간에도, 멤버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잡힌 스케쥴들을 모두 소화한다. 즉, 멤버들이 부상을 입어도, 한일 양국 소속사가 전혀 망설임없이, 일정을 계속 진행시키는 관행이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이렇듯 무리한 일정 속에서도, 이렇듯 아픈 상태에서도, 이렇듯 부상과 사고를 겪는 와중에도, 이들은 모든 무대를 무사히 치뤄냈고, 큰 성과를 거두어냈다. 언제나 그랬다. 동방신기 멤버의 사정이나 건강상태 때문에 무언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라면 소속사는 대단히 감사해하며 휴식을 선물해야했다. 아무리 강철도 씹어먹을 나이의 젊은이라고 해도, 한국, 일본, 아시아 각국을 뛰며, 2개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숱한 앨범을 내고 숱한 무대에 서며, 팬미팅과 도장회, 악수회 등 몸으로 뛰는 숱한 프로모션을 해낸 이들에게는 – 다른 모든 가수들이 갖는 휴식기와 충전기를 주어야 했다. 아무리 한국 연예 업계가 척박하다해도, 보통은 이런 활동을 해낸 가수에게 어느 정도의 휴식기를 주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이들에게 주어진 휴가는?
2006년에는 5일이었다. 2007년에는 1주일.
그리고 2008년과 2009년에는 ‘인심써서’ 10일이었다.
東方神起のスケジュールは何の変更もなくそのまま進行された。
その年3rdアルバムを出した東方神起は、大部分のステージで口パクを使った。
数回生で歌ったりもしたが、大部分のステージと年末の授賞式は全部口パクだった。
ファンは残念がり、大衆からはひんしゅくを買った。
普通口パクが非難される理由は一つだ。
歌手の歌唱力不足をカバーする水準で乱用されるためだ。
だが、この時期彼らの口パクは、
‘コンディション乱調にも関わらずスケジュールを押し通すための口パク’が
ひょっとして正しくなかっただろうか。
すでにその年に東方神起は日本でもライブツアーをやり遂げ、
ずば抜けたライブアーティストであることを誇示したからだ。
2006年10月14日ユノ・ユノはテレビ放送を録画をしている最中、
ボンドジュース事件の犠牲者になり病院へ急送され胃洗浄をする。
いわゆる’アンチ’を自負するある女性の悪意的犯行の結果で、
ボンドが入った飲み物を飲んだのだ。
下手すると命まで奪い取ることができる大事故だったが、幸い彼はすぐに回復した。
だが、大きい精神的打撃を受けただろう。
誰が考えても、こういう事故に遭った時には、休息期間持って、
精神的安静をとることが当然の手順だ。
しかしやはり東方神起のスケジュールは何の変更もなく進行される。
彼が入院した時には、残りのメンバーたちが放送に出演し、
彼は退院するやいなやチームに復帰する。
その上該当事件が起きたプログラムさえ、再収録する。
その時彼らの姿には明確に疲労が見え始めた。
若いミュージシャンの姿を見る最も大きな楽しみは、その元気さと覇気ではないのか。
企画会社の無神経な措置を私はまったく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負傷しても闘魂で立つ姿は感動を与えることは与える。
しかしそういったものは一度で終わってこそ正常だ。
そういうことが反復されるならば、それはシステムに異常があるということだ。
システムの異常を個人に転嫁させる不当な慣行である。
彼らの負傷と事故はこの時が初めてではなかった。
2005年にヨンウン・ジェジュンが足を怪我したが、活動は続いた。
2006年日本のツアーが終わった直後に、
ユノ・ユノはアジアツアーを控え、足を捻挫したりもした。
その状態でa-nationのために出国しようと、
マネジャーに背負われて出国する場面が報道され話題になったりもする。
このような慣行は今でも続く。
今年2009年、19回に達する日本でのツアーを始める直前、
シア・ジュンスはリハーサル中に足を怪我する。
エイベックスは、’公演取り消しまで考慮したが本人の意向で公演を押し切る’
という立場を発表し、シア・ジュンスはツアー序盤、車椅子に座って歌だけ歌う。
こういう状況が報道されれば、人々は公演をしない時間には、彼らが休息を取ったと思う。
だが、やはりそんなことはない。
シア・ジュンスが足を怪我したその期間でも、
メンバーは韓国と日本で決められたスケジュールを全部消化する。
すなわち、メンバーが負傷しても、日韓両国の所属事務所が全く気迷いなく、
日程をずっと進行させる慣行が完全に定着したのだ。
このように無理な日程の中でも、このように辛い状態でも、
このように負傷と事故を体験する最中でも、
彼らはすべてのステージを無事にやりきったし、大きな成果を上げた。
いつもそうだった。
東方神起のメンバーの事情や健康状態のために何か取り消しになったり
延期になるということは、ほとんどなかった。
これほどなら、所属事務所は深く感謝して休息をプレゼント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いくら鋼鉄も噛んで食べる年齢の若者だったとしても、
韓国、日本、アジア各国を走り、2つの言語で話して歌って、
多くのアルバムを出して多くのステージに立って、ファンミーティングとスタンプサイン会、
握手会など体を使って多くのプロモーションをやり遂げた彼らには
他のすべての歌手たちが持つオフ期間と充電期を与え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いくら韓国の芸能界が不毛だとしても、
普通はこういう活動をやり遂げた歌手にある程度の休息期間を与えるのが通例だ。
しかし彼らに与えられた休暇は?
2006年は5日だった。 2007年は1週間。
そして2008年と2009年は’人としての情けをかけて’ 10日だった。
동방신기의 휴가에 숨겨진 비밀 – 일년내내 쉬는 날은 오직 휴가뿐?
東方神起の休暇に隠された秘密
-一年中ずっと休める日はただ与えられた休暇だけ?
동방신기의 휴가가 일주일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딱히 충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왜? 가수란 직업은 ‘놀고먹는’ 부분이 많은 자유 직업이라고 우리가 은연중 생각하기 때문이다. 활동이 끝나면 다들 쉰다. 투어를 마치고 나서도 쉰다. 슬럼프에 빠져서 쉬기도 한다. 먼 나라로 여행가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재충전기’라는 명목으로, 자유시간을 가진다. 감성으로 일하는 직업인이니까, 사실 이런 시간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가수들이 엄청난 강행군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정 반열에 올라서면, 또 활동 기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활동을 휴지하는 기간이 주어졌다. 최소한 몇달의 ‘스케쥴 없는’ 기간을 가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인기그룹이자 아시아 최고의 인기그룹이기도 한 동방신기는 당연히 ‘회사에서 주는 정식 휴가’말고도 휴식기 혹은 충전기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정을 지켜보다면 보면 그런 것이 안 보인다. 동방신기는 데뷔 이래, 지금까지 ‘휴식기’ 혹은 ‘충전기’를 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매년 단 한번 받는 일주일 가량의 휴가가 이들이 6년동안 가진 휴식의 전부인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강행군이 계속되면서 이들은 끊임없이 질병에 시달렸다. 기사나 방송을 통해 편도선염이나 천식이나 알레르기와 같은 병명들이 이들의 이름과 나란히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부상에도 계속 강행되는 일정이, ‘이깟(?)’ 병 때문에 멈출 까닭이 없다. 이들은 병을 달고 살았다. 합숙 생활 탓에 멤버 한명이 걸리며 모두가 동시에 걸린다는 ‘감기’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해인가는 며칠 안되는 휴가 중에 모두가 앓아누워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이들이 방송에서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너무나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탓에, 대단한 팬이 아니라도 2~3년간 이들을 지켜보다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일이다.
팬들은 매번 무대에 이들이 설 때마다, 부상과 질병의 조건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을 염려했다. 그러다가 일반인들에게는 빈축을 사기도 한다. 왜 동방신기의 무대 영상 댓글은 다 ‘아파서 평소보다 못했다’라는 타령이냐고. 팬들은 억울했을 것이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부상과 질병이 있다고 해서, 이들에게 따로 ‘회복기’조차도 주어진 적은 없다. 이걸 내가 끈질기게 기억하는 이유는, 2006년 가을부터 ‘저 사람들의 100% 충전된 상태의 무대를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계속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시기는 오지 않았다. 아프면 아픈대로, 다쳤으면 다친대로 그냥 그 상태로 그대로 이들은 일을 계속 했다. 그러면서 시간의 힘을 빌어 부상에서 회복했고, 컨디션 난조를 극복했다. 그렇게 해온 것이 근 6년째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 – 그것은 이들이 한국 활동과 일본 활동을 함께 하기 때문이었다. 한국 활동과 일본 활동을 교대로 하기 때문에, 양국의 음악팬들은 은연중 이 팀이 활동기와 비활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양국 활동의 병행을 아는 사람들조차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 활동와 일본 활동의 사이에 중간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이들은 오늘 한국 활동이 끝나면, 내일 비행기를 탔다. 일본 활동을 하다가 스케쥴이 비면 한국 스케쥴이 잡혔다. 한국에 일단 오면 ‘이왕 온 김에’ 며칠 쉬어가는게 아니라, 다시 다음날 비행기로 일본에 가서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허다했다. 가령 동방신기 일본 스케쥴이 목요일과 토요일에 잡혀있다해도, 소속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금요일에 한국 스케쥴을 잡곤 했다. 때로는 당일치기로 스케쥴을 소화하고 출국하기도 했다. 이것은 이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이것은 비밀이 아니다. 굳이 팬들이 아니라도, 케이팝와 제이팝 모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마치 묘기와도 같은 스케쥴이 생겨나기도 했다. 2006년 이들은 한국에서 태국, 태국에서 독일, 독일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다시 사이판으로 가는 스케쥴을 단, 일주일만에 진행한다. 최강창민은 당시 몹시 아팠다며 일본 방송에서 이를 ‘즐겁지 않은 기억’으로 회상하기도 했다.
2008년 한일 양국에서 드높은 성과를 올렸던 연말에는, 그야말로 홍길동같은 스케쥴을 소화해낸다. 한일 양국의 연말방송은 물론, 철야방송와 정초의 아침 방송까지 모두 연속으로 출연해낸 것이다. 그 출연 일정표를 한번 팬들에게 수소문해보시라. 기가 막힐 것이다.
東方神起の休暇が一週間といっても、人々は確実に衝撃は受けないだろう。
私たちも初めはそうだったから。
なぜ? 歌手という職業は’遊んで食べている’部分が多い、
自由な職業だと私たちがいつの間にか考えるためだ。
活動が終われば皆休む。 ツアーを終えても休む。 スランプに落ちて休んだりもする。
遠い国へ旅行に行ったり、自身がしたい事を成して、
‘再充電期’という名目で、自由な時間を持つ。
感性で仕事をする職業であるため、事実こういう時間は必須だ。
韓国の若い歌手が途方もない強行軍を遂行しているのは事実だ。
だが、日程の順序に従うと、また、活動期間が過ぎれば、
どんな方法ででも活動を休止する期間が与えられた。
最小限数ヶ月の’スケジュールがない’期間を持つ。
だから、私たちは韓国最高の人気グループでありアジア最高の人気グループでもある
東方神起は当然’会社から与えられる正式な休暇’だけでなく、
休息期間あるいは充電期間があるだろうと考えた。
ところが日程を見れば見るほど、それが見えない。
東方神起はデビュー以来、今まで’休息期間’あるいは’充電期間’を持ったことが
ただの一度もなかった。
毎年ただ一度受ける一週間ほどの休暇が、
彼らが6年の間持った休息の全部だとみられた。
このような強行軍が続きながら、彼らは絶えず病気に苦しめられた。
記事や放送を通じて扁桃腺炎や喘息やアレルギーのような病名が
彼らの名前と並んで議論されたりもした。
だが、負傷してもずっと強行される日程が、
‘これくらいの’病気のために止まるわけがない。 彼らは病気と共に生きた。
合宿生活のせいでメンバー1人がかかると皆が同時にかかるという’風邪’は
日常とも同じことだった。
ある年は何日にもならない休暇中、皆が病気で床につき連絡ができなかったと、
彼らがテレビ放送で話したりもした。
このような事実はあまりにも反復的に起きるせいで、
長いファンではなくても2~3年間彼らを見守っているファンなら、
誰でもわかることだ。
ファンは毎回ステージに彼らが立つたびに、負傷と病気の条件で歌って踊る彼らを心配した。
そうするうちに一般人にはひんしゅくを買ったりもする。
なぜ東方神起のステージ映像のコメントはみな
‘辛くて普段より上手くできなかった’というたわごとかと。
ファンは悔しかっただろう。 それが事実だったから。
負傷と病気があるといって、彼には特別に’回復期’さえも与えられたことはない。
これを私がしつこく記憶する理由は、
2006年秋から’あの人たちの100%充電された状態のステージを見たい’と思い、
それをずっと待ち望んだためだ。
しかしそのような時期はこなかった。
病気の時は病気のまま、ケガしたらケガしたそのままその状態で、
彼らはことを継続した。
それと共に時間の力を使い負傷から回復し、コンディションの乱調を克服した。
そのようにしてきて、およそ6年目である。
このような事実が水面上にあらわれなかったもう一つの理由-
それは彼らが韓国での活動と日本での活動を一緒にするためだった。
韓国活動と日本活動を交代でするから、両国の音楽ファンたちは
いつの間にかこのチームが活動期と非活動期を持っていると考えるためだ。
両国活動の並行を知っている人たちさえこう思う。
韓国活動と日本活動の間に中間期間があるだろうと。
ところが違った。
彼らはその日韓国での活動が終われば、翌日飛行機に乗った。
日本で活動をしてスケジュールが空けば韓国のスケジュールが入れられた。
韓国にひとまず戻ると’どうせ戻ったついでに’何日か休んでいくのでなく、
また翌日飛行機で日本に行ってテレビ放送に出演することがかなり多かった。
たとえば東方神起の日本でのスケジュールが木曜日と土曜日にあったとしても、
所属事務所は何一つ動じることはなく、金曜日に韓国スケジュールを入れたりした。
時には日帰りでスケジュールを消化して出国することもした。
これが彼らの日常になった。
これは秘密ではない。
あえてファンたちではない人でも、K-POPとJ-POPに関心のある人には充分良く知られた事実だ。
こんな最中にあたかも妙技とも言えるスケジュールが生じたりもした。
2006年彼らは韓国からタイ、タイからドイツ、ドイツから韓国、韓国から日本、
日本からまたサイパンへ行くスケジュールをたった一週間で進行する。
チェガン・チャンミンは当時とても辛かったと言い日本の番組でこれを
‘楽しくない記憶’として回想したりもした。
2008年日韓両国で非常に高い成果を上げた年末には、
それこそホン・ギルドンのようなスケジュールを消化する。
日韓両国の年末放送はもちろん、徹夜放送と年初の朝の放送まで
全部連続で出演しやり遂げたのだ。
その出演の日程表を一度ファンたちの噂を頼りに探してみるといい。
開いた口がふさがらない。
개선의 기미없이, 더욱 잔인해진 스케쥴 – 2009년까지 이어져
改善の兆しなしに、より一層残忍なるスケジュール
-2009年まで続く
이런 식의 ‘스케쥴 짜고 무조건 집어넣기’식 활동은 2009년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올해 일본 도쿄돔 공연을 앞뒤로 벌어진 스케쥴의 향연(?)이다.
동방신기는 2008년 50만장이라는 – 최근의 한국 시장에서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운다. 2009년 일본에서 대대적인 인기 돌풍이 일어났다. 그 결과 19회 아레나 공연의 티켓은 매진을 넘어 품귀 사태를 빚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쿄돔 2일 공연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업을 달성한다.
이 정도 그룹이라면 어느 소속사에선들 대접을 안해줄 것인가. 업고다녀도 모자랄 판이다. 이제 무리한 스케쥴은 차츰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고, 이들에게도 한두달의 휴식기도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천만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동방신기 일본 투어가 끝나가던 6월, 이들은 오사카에서 공연을 4회 연속 치르고, 그 다음주 나고야에서 공연을 3회 치룬다. 공연 자체의 강도도 상당히 셌다. 공연 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겼고, 멤버들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라이브로 29곡을 불렀다. 아시아에서 가장 격하다는 안무와 함께 말이다. 매번 공연마다 멤버들은 탈진했고, 연속 공연이 있는 날이면, 이틀째에는 멤버들의 체력 저하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공연의 강도는 필요 이상으로 격렬하고 혹독했다. 일본 소속사마저, 한국 소속사의 행태를 배워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렇게 아레나(일본에서는 1만석~2만석급 공연장을 아레나로 통칭한다) 투어를 마치고 나서 2주후 돔 공연이 잡혀있었다. 그게 먼저 발표된 스케쥴이었다. 2주라면, 새로운 내용을 짜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고, 멤버들이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회복해서, 다시 리허설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니까 그냥 좀 쉬고 하던 대로 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SM측 공연기획사에서 난데없이 동방신기의 태국 공연 스케쥴을 발표했다. 바로 그 2주간의 휴식 정가운데였다. 아레나 투어를 마친 그 주 주말 2일동안 태국에서 ‘한국어 곡’으로 공연하는 미로틱 아시아 투어 스케쥴을 잡은 것이다. 두달 내내 일본어 가사로 노래하고, 일본어로 공연을 진행하던 이들이, 다시 머릿속을 뒤집어엎어 한국어로 내용을 채우고 한국 곡들 안무를 다시 익혀 태국에 가서 공연을 해야했던 것이다. 그리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서, 일본어로 일본 곡들을 부르며 일본 곡들의 안무로 한국 뮤지션 최초의 도쿄돔 연속 이틀 공연을 해내야했던 것이다. 이거 정말 끔찍한 스케쥴 아닌가. 너무 끔찍해서 이미 우리가 따로 글을 쓴 바가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역사적 도쿄돔 콘서트를 끝낸 다음에는 만사 제치고, 이들에게 몇주간의 휴가가 부여될 줄 알았으나, 바로 그 주 주말에 ‘한국어’로 하는 북경 스타디움 콘서트가 또 잡혀 있었다.
이 스케쥴을 듣고나서는 그야말로, SM의 행태에 만정이 다 떨어져버렸다. 이것은 매니지먼트가 아니었다. 아티스트가 3일 뛰어 멀쩡하면, 고마워하는게 아니라 5일을 뛰게 하고, 5일 뛰어 비틀거리면, ‘좀 더 뛸 수 있어’라며 10일을 뛰게 하는 악랄한 착취자의 마인드였다. 어떻게 이런 관계가 가능한가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SM을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SM의 탓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멤버들과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충분한 금전적, 직위적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팬들도 수년간의 시간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서 숱한 불만과 불평을 가지고 있었으나 SM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니 대중들에게 이러한 문제들이 이슈가 되어 드러난 적도 없다. 왜였을까. 우리들도, 팬들도 이렇듯 혹독한 강행군을 멤버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굳이 바라보았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このような形’スケジュールを組み辛くて無条件で入れる’式の活動は2009年までもずっと続く。
その最も代表的なものがまさに今年の日本、東京ドーム公演を前後に挟んだスケジュールの饗宴だ。
東方神起は2008年50万枚という-最近の韓国市場ではとうてい達成不可能な-
CD販売記録を立てる。
2009年日本で大々的な人気烈風が起きた。
その結果19回のアリーナ公演のチケットは売り切れを越え、
足りないという事態になった。
そしてついに東京ドーム2日間の公演という史上初の偉業を達成する。
これほどのグループなら、どの所属事務所も厚くもてなしてはくれないだろうか。
おぶられて働いてもいい時期だ。
もう無理なスケジュールは徐々に減ると思ったし、
彼らにも1,2か月の休息期間も与えられないだろうかと考えた。
しかしとんでもない、そんなことは起きなかった。
それさえはおろか、さらに恐ろしいことが起きる。
東方神起の日本ツアーが終わらんとした6月、彼らは大阪で公演を4回連続行い、
その翌週名古屋で公演を3回行う。 公演自らの強度もだいぶ強かった。
公演時間は3時間を遥かに越え、メンバーはただ一瞬も休まず、ライブで29曲を歌った。
アジアで最も激しいという振りつけとともにだ。
毎回ライブのたびにメンバーは疲れきったし、連続公演がある日なら、
二日目にはメンバーの体力低下が目に見えるほどだった。
公演の強度は必要以上で、猛烈に苛酷だった。
日本の所属事務所まで、韓国の所属事務所の形態に
習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ほどだった。
とにかくこのようにアリーナ(日本では1万席~2万席クラスの公演会場を
アリーナと呼ぶ)ツアーを終えて2週間後、ドーム公演が準備された。
それが先に発表されたスケジュールだった。
2週間だと、新しい内容を組むには不足した時間で、メンバーが休息を取り、
体力を回復し、またリハーサルするにも不足した時間だ。
そのためそのまま少し休んで今までやった通りにするだろうと思った。
ところがある日突然、SM側の公演企画会社から突然東方神起の
タイ公演スケジュールが発表された。
まさにその2週間の休息中だった。
アリーナツアーを終えたその週の週末2日間、タイで’韓国語曲’で公演する
ミロティクアジアツアースケジュールを入れたのだ。
2ヶ月ずっと日本語の歌詞で歌って、日本語で公演を進行した彼らが、
また頭の中をひっくり返して韓国語で内容を満たし
韓国曲で振りつけをまた準備してタイに行き公演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
そしてまた日本に戻り、日本語で日本の曲を歌って日本の曲の振りつけで
韓国のミュージシャンとして初の東京ドーム連続二日公演を
やり遂げ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
これは本当にぞっとするスケジュールではないだろうか。
とてもぞっとしてすでに私たちが別に文を書いたりもした。
それのみではなかった。
歴史的な東京ドームのコンサートを終わらせた後に、全てを差し置いて、
彼らに何週間かの休暇が付与されたが、
すぐにその週の週末に’韓国語’での北京スタジアムコンサートがまた入れられていた。
このスケジュールを聞いてからはそれこそ、SMの形態に気が抜けてしまった。
これはマネージメントではなかった。 アーティストが3日走って元気ならば、
有り難く思うのではなく5日走るようにさせ、5日走ってふらつけば、
‘もう少し走ることができる’と10日走らせるあくどい搾取者のマインドだった。
どうしてこんな関係が可能なのかと思った。
しかし私たちはSMを遠慮なく批判することはなかった。
SMのせいだけではないと思った。
これらすべてのものがある程度はメンバーとの合意によったことだと思ったし、
何より彼らすべてのものに対して十分な金銭的、職位的補償が成り立っていると
信じて疑わなかった。
ファンたちも数年間の時間をたどりながら色々な懸案に対して多くの不満と不平を持っていたが、
SMを遠慮なく非難することはなかった。
だから大衆にこのような問題が問題として現れたこともない。
なぜだったのだろうか。
私たちも、ファンたちも、このように苛酷な強行軍をメンバーの意志が反映された結果だと
あえて捉えた最も大きい理由は何だったのだろうか。
형이라 불리고 아버지라며 감사받았던 SM 경영진들, 부끄럽지 않은가
兄と呼ばれお父さんと感謝されたSM経営陣、
恥ずかしくないのか
그것은 바로 멤버들 자신이, 단 한번도 무대에서 방송에서 공식석상에서 소속사를 원망하거나, 불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는 커녕, 내내 고마워하고 애정을 표시하고, 때로는 팬들의 원성을 나서서 잠재웠기 때문이었다.
소속사 대표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시했고, 팬들에게 쓴 소리를 듣는 스탭들을 감쌌고, 경영진을 형이라 부르며 꼬박 꼬박 챙기고 인사했다. 상을 받으면 가장 먼저 경영진들과 스탭들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앨범의 감사 노트에 꼬박 꼬박 그 이름들을 적어주었다.
때로 ‘바보스럽고’ ‘고지식해’보일만큼 이들은 소속사와 스탭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아마 우리나라 가수들 중에서 이들처럼, 소속사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을 표시하고, 이들만큼 충성스럽게 소속사의 방침에 따라 활동한 가수를 찾기란 정말 힘들 것이다.
때로 분명,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 그들이 소모되고 혹사당하는 느낌인데도, 그들의 말 속에서는 어떤 원망도 불평도 불만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민감한건가’ 싶었다. 꽤 많은 팬들이 몇해를 두고 이를 답답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 진실은, 그들 스스로도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동안 소속사의 방침을 믿고 따르며, 죽도록 일해왔는데, 전혀 개선되지 않은 대우와 극렬한 피로감에 세 멤버가 결국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인듯 하다. 그들 스스로 밝힌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SM과 경영진들은, 당혹스러움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혹할 까닭이 뭐가 있는가. 동방신기의 멤버들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난 오히려 ‘올 게 왔구나’ 싶었다. 합당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SM은 지금 놀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팬들은 2006년부터, 혹은 그전부터 숱하게 놀라고 실망하고 안타까워하고 이상해하고 씁쓸해하면서 이들을 지켜봐왔다.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무대를 선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력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기에 계속 지켜봐왔지만, 그것은 ‘온전히 즐거움만은 아닌 감상’이었다.
그러니까 SM경영진들은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지금 SM이 앞에 두고 있는 것은, 동방신기 세 멤버와의 법적 공방을 이기네 마네 하는 수준의 대결이 아니다. 지금껏 SM이란 음악회사의 전직원들에게 밥을 먹게 해준, 한국과 일본, 아시아의 소비자와 고객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껏, ‘동방신기가 믿고 신뢰하는 회사’라는 이유 하나로 숱한 SM의 실책과 오류, 졸속과 사고를 인정스럽게 덮어주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건 법정에서도 시비가 가려지지 않는 대결이다.
뒤돌아서는 소비자들은 SM에게 위약금을 낼 필요가 없다. 그건 오로지 경영진이 무릎꿇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진정으로 근본적인 개선을 도모해야, 지금 당장 동방신기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소속 아티스트들과 상호 존중의 기반 하에서 파트너쉽을 구축하고, 철학적으로 새롭게 회사를 재편해야만 풀릴까 말까 한 대결이다.
음악회사란, 아무리 영리한 마케팅의 법칙을 둘러댄들 근본적으로는 ‘대중의 마음’으로 먹고사는 회사이다. 지난 6년동안, 동방신기는 온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했다. 난 그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 그들은 지난 6년동안 소속사에 최선을 다했고, 대중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졸속으로 진행되는 지방의 허름한 무대에 섰을 때에도, 춤추는 각도 하나 누그러뜨리지 않고, 보컬적 긴장을 단 한치도 잃지 않으며 공연해내던 이들의 모습은 내 눈과 귀를 걸고 증언할 수 있다. 아마 수많은 팬들이 더 정확하게 그 사실을 증언할 것이다. 게다가 누가 증언하고 말것도 없이 그 현장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고 나면 이긴들 진들 – SM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 답을 SM은 모르는 듯 보이지만, 오랜 음악의 역사를 십수년간은 지켜봐왔던 오랜 음악팬인 우리들에겐 그 답이 분명해보인다.
[펌 허용/피파니아닷컴 piffania.com]
それはまさにメンバー自身が、ただの一度もステージや放送を通じて公式の場所で
所属事務所を恨んだり、不平を言ったことがないからだ。
そうすることはおろか、ずっと有り難く思い愛情を表し、
時にはファンたちの怨念の声を自らが収めたためだった。
所属事務所の代表をお父さんと呼んで愛情を表現したし、
ファンから厳しい意見を聞くスタッフたちをかばったし、
経営陣を兄と呼び、ずっとずっと気にして挨拶をした。
賞をもらえば、一番最初に経営陣のスタッフたちに感謝を表し、
アルバムのThanks toにずっとその名前を書いた。
時に’まぬけで’ ‘バカ正直に’見える程、彼らは所属事務所とスタッフに対する愛情を表した。
おそらく韓国の歌手の中で彼らのように、所属事務所に対する無限の信頼と愛情を表示し、
これほど忠誠心にあふれて所属事務所の方針により活動した歌手を探すのは、
本当大変だろう。
時に明らかに、見つめる私たちの目に、彼らが消耗し酷使される感じがわかるのに、
彼らの言葉の中からはどんな願望も不平も不満も感知しなかった。
だから私たちは’私たちが敏感なのか’と思っていた。
かなり多くのファンたちが何年もこれを苦しく思ってきた。
ところが-真実は、彼ら自身も苦痛だったのだ。
それにもかかわらず、相当期間の間所属事務所の方針を信じ従い、
死ぬほど仕事をしてきたが、全く改善されなかった待遇と猛烈な疲労感に
3人のメンバーが結局行動を起こすことになったようだ。
彼ら自ら明らかにした内容も大きく変わらなかった。
彼らのこのような行動に対して、SMと経営陣は、当惑さを見せている。
だが、当惑する理由は何があるのか。
東方神起のメンバーが’専属契約効力停止仮処分申請’を出したという消息を聞くやいなや、
私はかえって’くる時が来たなぁ’と思った。
しかるべき手順だと思った。
SMは今驚いたのかもしれないが、私は、そして恐らく数多くのファンたちは2006年から、
あるいはそれ以前からたくさん驚いて失望し、
惜しんで不思議がって苦しがりながら彼らを見守ってきた。
彼らがそれにもかかわらず、良いステージを見せてくれたし、
それにもかかわらず、活力を失わないように必死にあがき尽くしたので
ずっと見守ってきたが、それは’全て楽しみだけはでない鑑賞’だった。
だから、SM経営陣は勘違いしないように願う。
今SMが目の前に置いているのは、東方神起3人のメンバーとの法的攻防に
勝つとか負けるとか言う水準の対決ではない。
今までSMという音楽会社の全職員にご飯を食べさせた、
韓国と日本、アジアの消費者と顧客が、目をしっかりとあけて見守っている。
その人々は今まで、’東方神起が信じて信頼する会社’という理由1つで
多くのSMの失策と誤り、拙速と事故を情け深く思ってくれた人々でもある。
それは法廷でも是非を正せない対決だ。
後ろを向く消費者はSMに違約金を出す必要がない。
それはひたすら経営陣がひざまずいて心より謝罪してこそ、
本当に根本的な改善を企ててこそ、今すぐ東方神起の専属契約を解約して、
所属アーティストと相互尊重の基盤のもと、パートナーシップを構築して、
哲学的に新しく会社を再編してこそ解けるかどうかという対決だ。
音楽会社というものは、いくら賢いマーケティングの法則を言っても
根本的には’大衆の心’で暮らす会社だ。
去る6年の間、東方神起は衷心から最善を尽くした。
私はその事実を証言することができる。
彼らは去る6年間、所属事務所に最善を尽くしたし、大衆に最善を尽くした。
拙速に進行される地方のみすぼらしい舞台に立った時でも、
踊る角度一つ手を抜かずに、ボーカルとしての緊張をただ一寸も失なわず
公演をやり遂げた彼らの姿は私の目と耳をかけて証言することができる。
多分数多くのファンたちがさらに正確にその事実を証言するだろう。
その上誰が証言することもなく、その現場は全部記録されている。
こんな人々を相手に戦って勝っても負けても- SMに果たして何が残るだろうか。
その答えをSMは分かっていないように思えるが、
長い間の音楽の歴史を十数年間は見守ってきた長い音楽ファンの私たちには
その答えが明らかに見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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